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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성매매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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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에 대한 논의



                                                                                윤   강   희   자

                                                                   (부산성매매피해여성지원상담소 살림)

1. 성매매란 무엇이 문제인가?



성매매는 새로운 이슈도 새삼스런 역사도 아니다. 없는 듯이 은폐되다가 한 번씩 선정적으로 까발려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해 왔고 진부하리 만큼 늘 ‘문제’가 되고 있다. 은폐를 바라는 사람들은 말한다. “매춘(賣春)은 남성의 충동적인 성욕 때문에 존재하는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인데 이제 와서 어쩌겠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쯤 ‘왜 그토록 성적 능력이 탁월한 남성들이 매춘부라는 직업을 담당하지 않았는가’ 반문도 해볼 만하다. 왜 대부분의 매춘부들이 여성이었으며 왜 그러한 성적 행위가 필요한지를...



지금 ‘성매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단상들을 생각해 보자. 정육점 같은 시뻘건 등이 켜진 사창가뿐 아니라 이발소, 여관, 목욕탕, 술집, 산 도속도로 등 남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 그 화려한 뚜껑을 열면 기지촌 골목마다 방치된 혼혈 아이들, 제3세계에서 온 여성들, 빚과 착취의 늪, 인신 매매와 학대, 폭력과 살인, 회춘을 위해 매매되는 어린이들 그리고 에이즈로 죽어 가는 여성들이 쏟아진다.



다양한 양상의 성매매 현상을 접하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성매매를 문제시해야 하는가? 성매매의 무엇이 여성에게 해로운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아는 것, 그것은 성매매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과 대안을 가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양하게 얽힌 성매매 현상의 실타래를 풀고 새로운 역사를 짜는데 ‘관점’의 정립이야말로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2. 성매매에 대한 기본 관점 갖기



1) 용어 읽기 :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용어와 규정들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일반적인 윤락(淪落), 매춘(賣春), 매음(賣淫), 매매춘(賣買春)등의 용어로 불린다. 먼제 이제까지 주로 사용되어 온 용어들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윤락이니, 매춘이니, 매음 등은 ‘성을 파는 행위’만을 규정하는 용어들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들에서 ‘성을 사는 행위’는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성을 파는 행위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고 도덕적인 비난을 돌린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윤락’이란 ‘스스로 타락하여 몸을 버린다’는 의미를 갖는데, 이런 무시무시한 낙인은 성을 파는 사람에게만 찍힌다. 우리 사회에서 법이 정하는 윤락행위자, 즉 스스로 타락하여 몸을 버리는 자는 성을 파는 사람이며, 손님은 윤락행위자가 아닌 그저 ‘상대일’뿐이다.



대부분의 매춘부가 여성임을 감안할 때 윤락이란 결국 여성에게 부과되는 용어이며 상대가 되는 자는 도덕적 면죄부를 받는 셈이다. 이는 성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임을 헤아려 볼때 이중규범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성매매는 성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성을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때 성이 매매되는 현상에 굳이 ‘봄(春)’이란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성을 봄에 비유하게 되었을까? 춘정(春情), 즉 성욕이란 봄에 새 생명이 돋아나듯 지극히 순환적이고도 자연적인 현상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결국 성욕을 필연적인 것, 고정된 것으로 포장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 파는 행위인 대상인 ‘성’을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봄에 빗대어 ‘春’으로 표기하는 것은 성매매로부터 발생되는 문제들을 감추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성매매’라는 용어는 아동 매매, 인신매매 등과 같이 ‘거래’되는 측면을 강조하여 담을 수 있는 용어이다. 만약 우리가 ‘성매매자’라고 한다면 누구를 떠올릴지 생각해 보라. 여기에는 성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자, 성산업 등 성의 거래를 이루게 하는 총괄적인 맥락이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성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적극 권하고 싶다.



2) 성매매에 대한 편견깨기



가. 성매매는 필요악이다?



이제는 누가 왜 여성의 성을 필요로 하고, 그 필요 때문에 생기는 해악은 누가 입는 것인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철저한 악은 그 실체가 없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게 된다. 일상적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드나들거나, 넥타이를 매고 사업상 혹은 단합을 목적으로 성적접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성매매된 여성들의 처절하게 파괴된 삶을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필요악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남성들의 성욕은 한계를 정할 수 없는 것인지?

-성욕이 생길 때마다 여성의 몸을 통해서 해소해야만 하는지?

-남성들은 왜 넘치는 성을 팔지는 않고 사는 자가 되려 하는지를 찬찬히 따져보아야 한다. 희생자의 눈을 통하여 본다면 더욱 명백해진다. 어떤 이유로든 어느 누구도 성을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



나. 성매매는 성폭력을 예방한다?



반대로 성매매가 성하면 성범죄가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세계 여러 국가들의 선례에 비춰보면 성매매를 강력히 규지하는 나라에서 보다 성매매가 만연한 국가에서 오리혀 성범죄 발생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성매매 성폭력을 예방한다거나 대다수 여성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믿음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모른 채 갖게 되는 막연한 환상일 뿐이다. 이러한 환상은 단순한 환상의 의미를 넘어서 더 큰 위험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다. 왜냐하면 성매매는 성폭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성매매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성상품화된 여성의 몸에 쉽게 접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처럼 성매매가 묵인 방치된 사회는 강간 등의 성범죄가 없거나 적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율이 최고수위에 있다면, 여성을 도구로 삼는 성매매를 묵인하는 것이 오히려 성범죄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봐야할 것이다. 돈을 주고 여성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돈 없이 강제로 여성을 유린 할수 있게 때문이다. 여성을 성의 도구로 삼을 수 없는 건강한 사회에서 성범죄는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여성을 성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 성매매를 허용하여 다른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을 수 없다.



다. 성매매여성들은 일탈적 범죄자? 여성들의 자발적 선택?



성매매 수요자와 경제적 이득을 얻는 성산업자(성을 사는 남성과 성산업 업주)들에 의해 유지 확산된다. 스스로 선택했다 해서 모든 착취와 억업과 폭력조차 선택한 것은 아니고,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강제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발을 들여놓은 뒤 빚과 위협과 감시 그리고 자포자기로 빠져 나올 수 없는데도, 자발적이라고 성매매된 여성 개인에게 사회문화적 부산물을 처리하도록 떠맡기는 무책임한 사회가 될 수는 없다.

많은 성매매종사 여성들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개인적으로 가정폭력, 가난, 강간 등으로 가정을 떠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돼 어쩔 수 없이 성매매 현장에 뛰어든 경우가 많다. 이를 자발적 선택으로 보아 넘기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종사여성들은 살아갈 방도만 있다면 그곳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이미 한번 발을 들여놓은 여성은 자유롭게 그만 둘 수도 없는 것이 성매매 시장의 구조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성매매는 성산업의 자본가와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며, 여기서 이득을 얻는 것 또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닌 자본가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성매매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매춘여성의 자발성에 대한 질문은 ‘여성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비생산적인 물음이 아니라, ‘여성은 다양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선택하는가, 매춘여성은 성매매 행위 전반에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가, 매춘여성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그만 둘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3. 맺는 말



성매매는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남성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성매매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한, 언제나 그래왔듯 ‘보이지 않는 문제’로 남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성매매 공간에서 매춘여성들은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딘가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여성들을 직접적으로 옭아매는 것은 ‘빚과 폭력’이며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빚과 폭력’이다. 그러나 빚을 탕감할 대안이나 도움을 구할 곳도, 그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혜택과 대안의 가능성을 접할 기회를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여성일 수 있다.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육체에 대한 학대이다. 성매매를 이야기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 사시른 성매매는 성산업의 자본가와 남성들이 주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여기서 이득을 얻는 것은 매춘여성이 아닌 자본가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했든지 우리가 그것을 어떤 종류의 ‘일’로서 간주하든지 간에 성매매는 이를 필요로 하는 남성 손님과 업주, 그리고 이를 구조화하는 가부장제의 맥락에서 발생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좀 먹는 성매매, 그 가부장제의 비곗덩어리가 우리의 몸 속에 누적되어 숨통을 막게 될지, 우리 인식의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매매 반대는 인권을 향한 첫걸음이며 그 자체가 힘이다. 이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가 각자 선 자리에서 풀어 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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